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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13화

강형민 2023. 5. 2. 20:40

13화

"어으, 머리야……"

인아는 머리를 감싸 쥐고는 자리에 일어나 앉았다. 잠시 어젯밤에 술을 마셨나 생각해 보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 두통은 술마신 다음 날 느껴지는 숙취와 비슷했기 때문에.

잠시 멍하니 있던 그녀가 이내 고개를 갸웃했다. 술을 마신 건 고사하고 전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나질 않았다.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오자, 식탁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장바구니가 보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스며 나오는 비린내.

인아는 인상을 찌푸리며 장본 걸 하나하나 꺼내 식탁에 올려놓았다. 고등어, 삼치, 굴비, 임연수 등 생선 코너를 턴 것처럼 생선만 한가득이었다.

자기가 본 장이 맞나 해서 얼른 바닥에 떨어진 영수증을 들여다보았다. 어제 날짜가 찍혀 있고 동네 마트 이름도 떡하니 찍혀 있다.

"미쳤나…… 생선을 누가 먹는다고 이렇게……"

인아는 다시 생선들을 새카만 비닐봉지에 죄다 담아 음식물 쓰레기를 담아두는 통 안에 퍽 던져넣어버렸다.

"으! 비린내!"

암만 생각해 봐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는 생선을 싫어한다. 그나마 생선을 좀 먹는 오빠도 군대에 있고.

그런데 도대체 생선은 왜 이렇게 잔뜩 산 건지.

그때 어디선가 휴대폰 진동소리가 들려왔다. 소파 위에 던져져 있는 점퍼 주머니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휴대폰을 꺼내 통화 버튼을 누르자 효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오늘 스터디 안 와?

"응?"

- 이제 일어났니? 네가 지금 밖에 시간 안 된다고 해서 새벽같이들 모였구만.

"허얼!"

뒤늦게 휴대폰에 뜬 일정을 본 인아가 허둥지둥 말했다.

- 먼저 하고 있을래? 얼른 갈게!


***

스터디 내내 믹스커피를 마셨는데도 두통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효진이 머리를 붙잡고 끙끙대는 인아를 보며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다.

"두통약을 먹어. 커피 그만 마시고."

" 약 먹으면 속이 안 좋아."

"머리 아픈 것보다 속 안 좋은 게 낫지 않아?"

"둘 다 별로야."

아픈 걸 선택하라니. 그러자 효진이 턱을 괴며 말했다.

"네가 그 남자한테 너무 신경을 써서 그래."

"그 남자 누구?"

인아가 무심히 묻자 효진이 당연하지 않냐는 듯 물었다.

"누구긴 누구야. 그 주운 남자지."

"내가 남자를 주웠어? 어디서?"

인아의 말에 효진이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 그녀를 툭 치며 말했다.

"야. 왜 모르는 척해? 아, 동거하는 거 비밀로 하라고?"

"응?"

"내가 그걸 어디 가서 말한다고 그래? 아, 혹시 오빠 휴가 나왔니?"

"뭐라는 거야. 아직 안 나왔어. 곧 나오긴 하겠다."

"경찰서에선 아직 연락 없고? 어떡하냐? 네 오빠 알면 난리날 텐데."

인아는 효진이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왜 오빠가 난리가 나지? 남자를 주웠다는 건 또 무슨 말이고?

그녀의 말을 듣고 있자니 더 머리가 아파져 인아는 남은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수업이 끝나고 과외까지 마친 인아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왜 이렇게 서두르는지 알 수 없었다.

집에 뭘 놔두고 나왔나? 급하게 뭐 할 일이 있었나?

그러나 휴대폰으로 일정을 확인해 봐도 딱히 급하게 마쳐야 할 일은 없는 것 같은데, 그녀의 발은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자마자 집을 향해 달음질치고 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문을 열고 들어간 집은 평소와 다름 없는 컴컴한 집이었다.

뭐지?

알 수 없는 초조함에 불을 켜고 옷을 벗는 그녀의 귀에 첨벙 소리가 들려왔다.

화장실에 누가 있나 해서 깜짝 놀란 그녀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문을 열었지만, 역시나 불 꺼진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뭐야…… 나, 뭐 약 같은 거 먹었나? 왜 환청이 들리지?"

인아가 고개를 흔들며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식탁 위에 올려져 있던 장바구니를 대충 접던 중 웬 봉투가 바닥에 뚝 떨어졌다.

인아가 봉투를 집어 들고 안을 보니 웬 통장이 들어 있었다.

"뭐야?"

틀림없이 처음 보는 통장인데 자기 이름으로 되어 있고 상당한 액수의 돈이 들어 있었다.

자기 통장이 맞나 이리 뒤집어 보고 저리 뒤집어 봐도 틀림없이 자기 이름이었다.

잠시 멍하니 있던 그녀는 휴대폰으로 '그 여자'라는 이름을 검색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가 몇 번 가자 전화기 너머로 잠에 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네가 웬일이니……

"혹시 우리 집 왔다 갔어요?"

- 취했니. 내가 너희 집엘 왜 가.

"내 이름으로 적금 붓던 거 있어요?"

- 네 적금을 왜 내가 부어…… 아줌마, 애 때문에 잠 못 자서 피곤하거든? 그만 끊자.

인아가 잠시 망설이다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왜? 별이가 무슨 일 있어요?"

- 빨리도 묻는다. 별거 아니야. 감기.

"깨워서 미안해요. 자요."

인아가 조용히 말하자 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전화를 툭 끊었다.

출처를 알아내지 못해 찜찜하긴 했으나, 어쨌든 자기 이름으로 된 데다가 자기 집에 있던 거니 괜찮지 않을까 여기며, 인아는 통장을 주머니에 넣었다.

<뽀뽀. 해볼래?>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떠오르자, 인아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익숙한 소리였으나 누가 한 말인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착하다.>

거듭 떠오르는 목소리에 인아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무래도 약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


"주인아!"

주정인의 고함소리에 인아가 물을 마시다 말고 콜록거렸다.

"아우, 깜짝이야. 왜?"

"내 패딩 못 봤어?"

"오빠 패딩을 왜 나한테 찾아?"

인아가 수건으로 입을 닦으며 투덜대자 정인이  트레이닝 복 차림으로 방에서 튀어나오며 말했다.

"내 패딩이랑 바지랑 다 없는데? 집에 누구 왔었어?"

"오긴 누가 와. 잘 찾아봐. 오빠 물건 손도 안 대……"

말을 하던 인아가 갑자기 머리를 감싸 쥐자, 정인이 놀란 표정으로 동생에게 다가왔다.

"왜? 또 머리 아파?"

"어……"

"야,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냐? 너 어제부터 계속 머리 아프다고 했잖어."

정인은 어제 휴가를 나왔다. 말년 휴가였다. 그런데 오랜만에 본 여동생이 영 시원찮아 보였다. 잠도 잘 못 자는 거 같고 계속 머리 아프다 하고.

내세울 거라고는 건강밖에 없는 아이가 자꾸 아픈 걸 보니, 어딘가 심각한 질병이라도 생긴 게 아닌가 염려되었다. 새엄마가 낳은 별이를 보니 더 그랬다.

"같이 병원 가보자. 가서 검사받아."

정인의 말에 인아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병원 가봤어. 아무 이상 없대. 밥 잘 먹고 잠 잘 자래."

솔직히 병원에 갈 생각까지는 없었다. 그러나 효정이 하는 말에 더럭 겁이 났다.

효진과 그녀가 바다에 흘러온 남자를 주웠고, 인아가 그 남자를 집에서 돌봤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아는 전혀 기억이 없었다.

효진이 경찰에게 전화를 해보라는 말에 전화를 걸어보니, 그는 조금 놀란 것 같기는 했지만, 별다른 말이 없었다. 오히려 조금 시원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불편해진 건 인아였다. 다들 그를 알고 있는데, 정작 그를 직접 돌봤다는 인아는 그가 전혀 기억나질 않는 거였다.

당장 병원에 가서 이런저런 검사를 받았으나, 이상 소견은 없었다. 의사는 아마도 일시적 기억상실 같다며 약물복용을 의심했다. 요즘 대학생들의 약물복용 사례가 심각하다며.

말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그녀만 이상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 진료를 포기했다.

그 사람과 관련된 일만 잊어버렸을 뿐, 다른 일들은 모두 기억이 나니 생활에 불편함은 없었다.

"MRI 이런 것도 찍어봤어? 안 찍어봤으면 나랑 같이 가서 찍어 봐."

정인의 말에 인아가 무심하게 대답했다.

"다 해봤어. 아무 문제 없대. 그냥 두통약 먹으래."

기억이 없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해 봤자 결론도 나지 않을뿐더러 기분 좋게 휴가 나온 사람 걱정만 시키는 꼴이라는 생각에.

"너, 오빠 없는 동안 무슨 일 있었어?"

정인이 동생을 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 아무 일도 없었어."

"진짜?"

"진짜. 옷이나 찾아봐. 나 못 입게 하려고 어디 꼭꼭 숨겨놓고 기억 못 하는 거 아냐?"

"야, 너랑 나랑 체격 차이가 얼만데 네가 입을까 봐 그걸 숨겨 놓냐? 근데 진짜 어디 간 거야. 아, 친구 만나기로 했는데 뭐 입냐? 군복은 진짜 입기 싫은데……"

투덜거리며 다시 방으로 들어가는 오빠의 뒷모습을 보며 인아가 소리가 나지 않게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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