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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강형민입니다.
6화. 본문
습작
6화.
강형민
2023. 3. 29. 21:24
6화
평일 낮이니 차가 안 막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울로 들어서니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내내 조용하던 옆자리가 움즉거리는 게 보여 인아가 옆을 힐끗 보자 보조석에 있던 그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속 안 좋아요? 멀미나요?"
<...... 이 안에 얼마나 더 오래 있어야 하지?>
"이 안에? 아, 차 안에?"
<물도 없고…… 답답해. 숨쉬는 것도 힘들고……. 너네는 이러고 어떻게 살아?>
"물이요? 목말라요? 편의점 들를까요?"
그러나 그는 말없이 창문을 톡톡 두드렸다.
"왜? 창문 열고 싶어요?"
그러자 그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이거 열 수 있어? 이런 데서는 문을 열면 안 된다던데……>
"응? 차 안 타봤어요? 당연히 문은 열면 안 되지만, 창문은 열 수 있죠."
경찰이 모자라는 것 같다고 했을 때 속으로 욕을 했는데, 정말 좀 모자라는 것 같았다. 아님, 차를 안 타봤나?
설마…… 완전 부자라서 창문도 누가 일일이 열어주나?
하지만, 이래 저래 말이 안 되긴 했다. 인아는 보조석의 창문을 열어주며 혹시나 해서 말했다.
"밖으로 고개나 손 내밀면 안 돼요."
창문이 내려가자 그가 숨을 크게 내쉬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이내 인아를 보며 다시 물었다.
<이렇게 열리는데 왜 닫고 있어? 소라야?>
"소라? 먹는 소라요? 갑자기 웬 소라?"
<걔네들이 맨날 조그맣고 어두운 껍데기 안에 들어가 있는 거 좋아하잖아.>
"아아, 소라 좋아해요?"
<별로.>
"왜요? 맛있는데?"
<그래. 걔네는 너네가 다 잡아먹지.>
대화의 내용이 약간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정확히 뭐가 이상하다고 짚어내기가 힘들었다.
아마도 외국인이라 한국어로 바꿔 말하는 게 힘든가보다고 여겼다. 솔직히 그의 말이 한국어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녀의 귀에는 어쨌든 한국어로 들렸다.
다른 사람들 귀에는 대체 어떻게 들리는 걸까? 그가 입만 열면 다들 귀를 막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라타나 씨가 말하면 다들 귀를 막잖아요. 어떤 사람은 골이 아프다고도 하던데. 근데 나는 어떻게 라타나 씨 말을 다 알아듣는 거죠?"
<라티아나. 그걸 못 외워?>
"...... 내 이름은 뭐게요?"
<주인아.>
시간 지나 까먹었으려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인아가 민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세 글자지만, 그쪽은 네 글자잖아요. 우리 공평하게 두자씩 불러요. 그쪽은 나 인아라고 부르고, 나는 그쪽 아나라고 부르고. 어때요?"
<싫어.>
인아가 가볍게 한숨을 쉬며 자동차를 갓길에 세웠다.
"잠깐 있어요. 내가 물 사가지고 올게요."
잠시뒤, 다시 차로 돌아온 그녀의 손에는 흰 비닐 봉지가 들려 있었다. 인아가 봉지 안에서 생수와 샌드위치를 꺼내주며 말했다.
"생각해보니까 어제부터 아무 것도 안 먹지 않았어요? 병원에서 뭐 줬어요? 배고프죠?"
그녀가 말을 마치자마자 갑자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가 비닐에 싸인 샌드위치를 그대로 한입 왕 베문 것이다.
어찌나 이빨이 센지 비닐이 찢어지는 걸 보며 인아가 기겁을 했다.
"와악! 뭐하는 거예요? 비닐 뜯고 먹어야죠!"
모자라는 정도가 아니라, 사회성이 전혀 없는 동물 같았다. 설마, 다른 나라에서 살았던 게 아니라 산속, 오지 뭐 이런 데서 살던 남잔가?
문화의 혜택을 전혀 못 받고. 그래서 사회에 나와서 학대 받은 건가?
생각이 많아졌지만, 일단 비닐을 벗겨주는게 시급했다.
놀라운 속도로 샌드위치를 먹어치운 그는 의외로 생수병은 잘 열어서 먹었다. 비닐은 모르고 생수병은 안다고?
"배, 많이 고팠어요? 더 먹을래요?"
인아는 자기 걸로 사온 샌드위치도 그에게 내밀었다. 아까 본 가닥이 있어서 그런지 그는 이번엔 능숙하게 비닐을 벗겨서 내용물만 후다닥 먹어 치웠다.
생수도 한 병을 다 비웠다. 배가 고파 그러려니 하기에도 먹는 속도가 엄청 빨랐다.
다 먹은 그가 한숨을 쉬면서 입을 열었다. 당연히 고맙다고 할 줄 알았던 그의 입에서 엉뚱한 말이 나왔다.
<빨리 볼 일 다보고 집에 가야겠다. 이런 것만 먹으면서 어떻게 살아.>
잘 먹어놓고 기가 찰 노릇이었지만, 인아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런 것치고는 잘 먹은 거 같던데……."
<다음부터는 물고기로 사 와.>
그가 뻔뻔하게 말하는 걸 들으며 인아가 황당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무, 물고기? 물고기가 편의점에 왜 팔아요?"
순간적으로 어묵이 떠오르긴 했지만, 그가 말하는 물고기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샌드위치를 두 개나 해치운 그는 거하게 트름을 하며 의자에 길게 늘어졌다.
추운 겨울에 계속 창문을 열어놔 차 안은 냉골이 되어 있었지만, 그의 표정에는 처음 보는 편안함이 묻어 있었다.
<근데, 너는 왜 나 데리고 가? 내 말 알아들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니가 나 주워서?>
주웠다는 표현이 특이했다. 구해줬다라고 정정해줄까 하다가 한국어가 약해서 그런거다 나름 이해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라타나 씨 보니까, 옛날 생각이 나더라구요."
<라티아나.>
"아, 라티아나 씨. 어렸을 때 엄마가 돌아가셔서 보육원에 몇 년 있었거든요. 근데 보육원까지 어려워져서 거기 있던 애들이 다 다른 데로 가야 되게 생겼는데, 나는 갈 데가 없었어."
<보육원? 왜? 너도 다른 사람들이랑 말이 안 통했어?>
"그건 잘 모르겠는데, 나를 데려가겠다고 한 곳이 없었는지, 원장님이 나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어요. 원래 내 또래 애들이 다같이 다른 보육원으로 옮겨졌었는데, 거기 인원이 찾는지 어쨌는지…… 하여간, 나만 남았어요."
<흠.>
"그때 생각이 나더라구요."
<너는 그럼 누가 주워갔어?>
"때마침 아버지가 찾으러 오셨더라구요. 난 아버지 있는 줄도 몰랐는데, 아버지가 오셔서 그날부터 아버지랑, 새엄마랑, 오빠랑 살았어요. 지금은 독립해서 오빠랑만 살고 있고."
<아버지랑은 말이 통했어? 아버지가 네 말 알아들었어?>
아버지가 네 말을 알아들었냐는 표현이 우스웠다. 같은 한국 사람인데 설마 말이 안 통했을까.
하지만, 다른 의미라면…….
"우리는 지금도 말이 안 통해요."
인아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라티아나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나랑 똑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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