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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5화.

강형민 2023. 3. 28. 17:02
5화.

"이, 이백 오십 만원이요?"

인아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무연고자는 발가락이 모두 붙어 있는 탓에 걷지 못한다고 하였다.

발가락 다섯 개가 지지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나 뭐라나.

천생 휠체어를 타야 하는데, 휠체어가 장장 250만 원이라는 것이었다. 인아는 순간적으로 통장 잔고를 생각했다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경찰에게 발끈했다.

"아니, 내가 보호하는데 휠체어까지 내 돈 주고 사야 해요?"

이 모든 상황이 너무 황당하고 말이 안 되어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경찰도 그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휠체어 지원 사업 이런 것들에 대해 간호사에게 문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휠체어 지원 사업은 병원에서 하는 일이 아니라, 복지 재단에서 하는 일이라고 하였다.

관리하는 부서가 다르니, 병원에서 구입하려면,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의료기 상사에서 구입하려면 직접 돈을 내라는 거였다.

경찰 두 명은 각자 다른 곳에 전화를 해 휠체어를 지원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문의하기 시작했다.

그때 어디선가 무연고자의 소리가 들려왔다. 7층에서 하는 말이 2층까지 들리다니. 그 소리에 경찰은 물론이요, 간호사들까지 다들 인상을 찌푸렸다.

"어우…… 저 양반 또 시작이네."

"도대체 저런 소리는 어떻게 내는 거야? 이런 경우 봤어?"

간호사들이 자기들끼리 떠드는 걸 보며 인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 사람, 이상한 소리 내는 게 아니라, 말하는 거거든요 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를 이해하는 듯한 말은 그녀 역시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기 딱 좋았다.

그저 저들처럼 귀가 따갑거나, 골이 울리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겼다.

한참 이런저런 통화가 오고가더니 사복 경찰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

"일단 여기 병원 휠체어 하나 가져가시고요, 저희가 나중에 지원 받아서 다시 병원에 주든가 하겠습니다. 신고도 해주셨는데, 여러 가지로 이거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보아하니 사정을 했는지, 공권력을 사용했는지, 간호사와 병원 관계자 같아 보이는 직원의 표정이 별로 안 좋아 보였지만, 인아는 얼른 휠체어를 챙겼다.


***


그가 쓰러졌을 때 입고 있던 옷은 응급실에서 가위로 잘라 버린 탓에 무연고자는 환자복 위에 경찰이 둘러준 점퍼만 입고 퇴원하게 생겼다.

인아가 무연고자의 입에 마스크를 씌워주려 하자 그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이거 써야 해요. 그리고 이거 쓰고 있는 동안 말하지 않기예요. 말하면 안 돼요. 알았죠?"

대충 분위기가 파악되었는지, 그가 포기한 표정으로 커다란 눈을 깜빡거렸다.

경찰은 그를 부축해서 휠체어에 앉히고 인아의 차까지 직접 휠체어를 밀어주었다.

그를 보조석에 태우고 휠체어를 접어 트렁크에 실으려 했지만, 경차에는 휠체어가 들어가지 않았다. 뒷좌석에 넣어보려 했으나 마찬가지였다.

경찰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이거…… 휠체어는 못 가져가시겠는데요?"

솔직히 집에서 휠체어를 끌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라 인아는 당당하게 목발이라도 달라고 말했다.

자기들의 책임을 신고자에게 돌리고 있는 탓에 경찰은 하늘의 별도 따다 줄 것처럼 냉큼 직원에게 말해 목발을 가져오게 했다.

직원 역시 휠체어를 뺏길 가능성이 없어지자 목발쯤 하는 자세로 목발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말이 없었다.

"이거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신원 파악되는 대로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서울에 서부 경철서에 연락해 두었으니까, 아마 거기서도 연락이 갈 겁니다. 무슨 일 있으면 저에게 전화주시고요."

더이상 대꾸하기도 짜증나, 인아는 고개만 끄덕이고 차에 몸을 실었다.

마침내 차가 출발하자 인형처럼 가만히 앉아 앞만 보고 있던 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제 말해도 되나?>

"네?"

인아가 그를 돌아보았다가 얼른 정신을 수습하고 말했다.

"아, 네. 우리 둘밖에 없으니까 이제 말해도 돼요."

<이건? 벗어도 돼?>

그가 마스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묻자 인아가 얼른 손가락으로 마스크 고리를 귀에서 빼주었다.

병원에 있을 때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차에서 본 그는 새하얀 건 둘째치고, 정말 인형처럼 잘생긴 얼굴이었다.

눈, 코, 입이 어떻게 저렇게 또릿또릿하게 생겼는지 신기할 정도다. 일단 한국 사람이 아닌 건 확실하고. 그런데 어느 나라 사람인지 감도 잡히질 않았다.

서양 쪽도 아닌 것 같고, 동남아 쪽은 더더욱 아닌 것 같고. 새하얀 걸 보면 북유럽 쪽인가? 추운 나라?

"정말 불법체류자예요? 붙들려서 계속 일했어요?"

인아가 운전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물었으나 그는 여전히 말없이 앞만 보고 있었다. 힐끗 보니 옆에서 보이는 코가 말도 안 되게 오뚝하다.

"이름이 뭐예요?"

그녀의 질문에 남자가 요상한 발음으로 대답했다.

<라티아나>

이름부터 한국 사람이 아니다.

"여자 이름 같네?"

<수컷이야.>

"네?"

인아는 순간적으로 남자를 수컷이라고 표현하는 외국이 어디인가 생각해보았다.  

"내 이름은 주인아예요."

<나를 어디로 데려가?>

"일단 우리 집으로 가요. 오빠가 군대에 있어서 집에 없거든요. 당분간 오빠 방에서 지내다가 경찰서에서 연락오면 집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볼게요."

<집엔 언제든 갈 수 있어.>

"응?"

인아가 눈을 크게 떴다.

"집 알아요? 집 어딘지 알아? 그럼 말해줘요. 내가 경찰한테 전해줄게요."

말이 안 통한다는 선입견 때문에 집을 물어볼 생각도 못 했다. 그러나 집을 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차를 돌려야 하나 해서 신호를 확인하는 그녀의 귀에 특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못 가.>

"응? 왜요?"

<할 일이 있어.>

"무슨 일?"

<넌 말해도 몰라.>

"아, 뭐래. 나한테는 다 말해야 하거든요? 당분간이긴 하지만, 내가 라니 씨 보호자예요."

<라니가 뭐야?>

"아, 이름이 뭐라고 그랬죠?"

<라티아나.>

"너무 긴데, 그냥 라나 씨라고 부르면 안 돼요?"

<안 돼.>

그의 잘못은 아니지만, 빈대 붙는 주제에 참 당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집 알면 언제든지 갈 수는 있어요?"

<...... 어.>

"언제 갈 건데요?"

<할 일 다 하면.>

"할 일이 뭔데요?"

<공부.>

"무슨 공부?"

<너네들 공부.>

"응? 너네들? 우리? 우리를 공부한다고요?"

<응.>

그의 말에 갑자기 갈피가 잡히기 시작했다.

"혹시, 한국에 유학온 거예요? 유학 왔다가 나쁜 사람들한테 걸려서 혹사당한 거예요?"

그러나 그는 말없이 다시 정면에 서 있는 차의 백라이트만 보고 있었다. 앞차의 붉은 불빛 때문에 그의 회색 눈동자가 핑크색으로 보였다.

"부모님께 연락해야 되지 않아요?"

<내가 알아서 가.>

"허얼……"

가만 보니 그는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듯했다. 지금 우리집에 얹혀 살러 가는 걸 모르나? 나한테 빌붙으려고 작정한 건가?

"라나 씨."

<라티아나.>

"아, 아니 글쎄, 지금 라티아나 씨는 여기 있을 곳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라티아니 씨 집에 연락해서 돌아가는 게 맞는 거 같은데요?"

<너랑 있을 거라며.>

그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투명할 정도로 새하얀 얼굴에 회색의 맑은 눈동자가 자기를 뚫어지게 보자 인아는 순간적으로 넋이 나갔다.  

뒤에서 빵빵 클랙슨 울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릴 때까지, 그녀는 그렇게 그의 눈에 혼을 빼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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