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효진이 식식대는 소리에 잠이 깬 인아가 멍한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 네가 무슨 상관인데?....... 뭐? 네가 왜 데리러 와? …… 와. 이 또라이 진짜……"
이 민박에 자기들만 있는 게 아닐 텐데, 게다가 아직 밤중인 것 같은데 친구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거칠어지자, 인아는 슬그머니 그녀의 팔을 잡고 말했다.
"야, 진정해. 옆방에 다, 들리겠다."
효진이 그녀를 힐끗 내려다보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 겉옷에 팔 한짝을 억지로 꿰어차기 시작했다.
"야, 추운데 어디가? 효진아."
인아가 그녀의 다리를 잡으려 했으나, 효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가버렸다.
괜히 말렸나 후회하며 인아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데리고 들어올까 했지만, 멀리서 간간히 들려오는 고성에 그냥 있기로 했다. 저럴 때 건드리면 더 폭발한다는 걸 잘 알았다.
들어오면 따듯한 거라도 마시게 해야겠다 생각하며, 그녀는 방에 있는 커피포트 안에 생수를 넣고 버튼을 눌렀다.
낡은 텔레비젼 장 위에는 손님들 먹으라고 놔둔 티백이 몇 개 놓여 있었다. 보리차처럼 마시라고 컵에 둥글레차 티백을 넣었다.
밖에서 얼마나 오래 통화를 했는지, 효진이 방에 들어왔을 땐 그녀는 코와, 볼은 물론이요, 귀까지 온통 새빨개져 있었다.
하지만, 꽁꽁 언 얼굴과는 달리 한쪽 입꼬리가 자꾸 위로 씰룩씰룩하는 게 인아는 그녀가 억지로 터져나오려는 미소를 참고 있다는 걸 알았다.
시원하게 욕이라도 한 사발 해줬나 싶어, 둥글레차를 탄 컵을 그녀에게 내밀며 눈치를 보는데, 효진이 그런 인아의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 데리러 온다네."
"누가?"
"재현이가."
"어?"
"여자 둘이 이런 델 오면 어떡하냐고 데리러 온대."
뜬금없이? 그렇게 싸워놓고 이젠 데리러 온다는 말에 인아는 할 말이 없어졌다. 둘이 헤어진 거 아니었어?
인아의 표정에서 이런 질문들을 읽었는지 효진이 갑자기 목소리 톤을 높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헤어졌는데 이제 와서 뭘 데리러 온다니? 미친 거 아냐?"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뭐……"
효진이 다시 시선을 피하며 우물거렸다.
"그러고 싶으면 그러라고 했지."
"효진아."
"아니, 걱정돼서 그런다는데 자꾸 오지 말라고 하면 좀 그렇잖아."
"다시 만나게?"
"...... 일단 얘기는 해보게."
"재현 씨가 먼저 그만 만나자고 한 거잖아."
"근데, 데리러 온다잖아."
더 이상 말하진 않았지만, 인아는 친구가 또다시 상처를 받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아니, 신재현 그 자식은 헤어지자고 했으면 깔끔하게 헤어질 것이지 뒤늦게 이렇게 질척거리는 이유가 뭔가.
다시 만나자고 할 건가?
인아의 머리는 재현 씨가 다시 만나자고 했냐고 친구에게 물어보라고 했지만, 마음은 그러지 말라고 하고 있었다.
물어서 뭐하겠는가. 친구가 아직까지 그 남자를 못 잊고 있는데.
나중에 또 헤어져 상처를 받게 되도, 그건 그를 못 잊은 것에 대한 대가라 생각했다.
***
날이 밝기가 무섭게 재현의 외제 스포츠카가 민박 집 앞에 도착했다.
새벽부터 세수하고 화장을 하는 등, 꽃단장을 한 효진이 새초롬한 표정으로 차에 올랐다.
"인아야. 같이 갈래?"
보조석에 탄 친구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 걸 보며 인아가 피식 웃었다.
"그럼 내 차는 어떡해? 조심해서 잘 올라가. 나도 곧 뒤따라 갈게."
"그래, 뭐……"
재현이 운전석에서 인아를 향해 고개를 꾸벅해 보이자, 효진은 춥다며 보조석의 창문을 올렸다.
여자들끼리만 바닷가에 오면 위험하다고 한 그녀의 남자 친구는 자기 여자 친구만 걱정되었나 보았다.
효진과 재현이 만나는 걸 1년 동안 봐 왔지만, 인아가 재현과 이야기를 나눠본 건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그나마도 인사 정도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효진은 자기 남친이 다른 여자와 대화하는 걸 몹시 불편해했다. 그게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그걸 알아 인아도 재현에게 별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자기 여자 친구만 태워 가는 건 몹시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민박집 주인에게 인사를 한 인아 역시 아침을 먹고 가라는 그녀의 말을 정중히 거절하고 자신의 낡은 경차에 올랐다.
오빠가 몰던 걸 물려받아 굴러가는 게 신기할 정도인 차지만, 그래도 이 차 덕분에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과외도 하고 돈도 벌고 있다.
인천 시내에 들어서니 어제 바닷가에서 발견한 사람을 실어다 놓은 병원이 눈에 들어왔다.
인천에서는 그래도 꽤 큰 병원이라고 들었는데, 서울의 대형 병원에 비하면 많이 허름했다.
그 사람은 어떻게 됐나. 살았나, 죽었나.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한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아무 연락이 없는 걸 보며 죽진 않은 것 같고.
그저 생각만 했을 뿐인데, 저절로 손이 핸들을 돌려 병원 주차장 안으로 들어서게 했다.
"아니, 뭐야…… 들어가서 뭘 하려고?"
주차를 하고서도 자기 행동에 어이가 없어진 인아가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이건 그저 발견한 사람으로서의 책임감이다, 구해준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정도는 확인해 봐야 할 것 아닌가 하고 스스로를 합리화시켰다.
어제 가본 응급실에 들어가니 데스크에 있던 간호사가 아는 척을 했다.
"어떻게 오셨나요?"
"아, 어제 바닷가에서 실려온 분, 괜찮은가 해서요."
"네?"
간호사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는지 눈이 동그레졌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아, 그 분? 아, 혹시 119 신고하신 분이세요?"
"네."
"보호자는 아니신 거죠? 그냥 발견만 하신 거죠?"
"네."
왜 그러나 해서 인아의 목소리가 점점 주눅이 드는데 간호사가 이걸 어떡해야 하나 하는 표정으로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찾아오면 안 되는 거였나?
인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간호사의 말을 기다렸다.
"어젯밤에 그분 깨어나셨는데, 조금 난리가 났어서요."
"난리요?"
"네. 쇼크 때문인지 계속 이상한 소리 내고 말도 못하고 그래서, 지금 1인실에 잠시 옮겼어요. 상태 보고 경찰이 다시 데려간다고 했는데."
"경찰이요?"
가족을 불러야지, 왜 경찰이 데려가나 하는 생각에 인아의 목소리가 커졌다.
"가족을 못 찾았어요?"
"네. 말도 못 하고, 신분증도 없고, 저희 병원에서도 계속 데리고 있을 수 없으니까 경찰이 일단 데려가기로 했어요."
"어디로요?"
"아마, 무연고자 돌봄센터 이런 곳이겠죠."
"몸은요? 몸은 괜찮아요? 어제 그 추운 데 다 젖은 채로 누워 있었는데."
그러자 간호사가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네. 검사 결과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고 하네요."
신기했다. 폐렴이나 뭐 그런 거 걸렸어야 정상 아닌가? 혈색이 하나도 없는 게 꼭 죽은 사람 같았는데.
멍한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는 인아를 보며 갑자기 간호사가 물었다.
"만나 보시겠어요?"
"네? 제가요?"
인아가 화들짝 놀라며 반문했다.
"만나러 오신 거 아녜요?"
"아, 아…… 그렇긴 한데……"
인아가 확실하게 대답하기도 전에 간호사 남자 간호사를 불러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 인아를 보고 말했다.
"이분 따라가시면 돼요."
"네? 아, 네……"
웬지 일이 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 와서 그냥 가겠다고 하면 그것도 이상할 것 같아 인아는 남자 간호사의 뒤를 따라갔다.
만나면 뭐라고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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