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강형민입니다.

1화 본문

습작

1화

강형민 2023. 3. 23. 11:21

1화.

바람이 몹시 부는 바닷가. 두 여자가 그 바람을 오롯이 받으며 해변에 서 있었다.

해변에는 그저 모래와 미역, 여자 둘 밖에 없는 듯했다.

"야…… 너 이러고 있는 거 재현 씨가 아냐?"

여자 중 한 명이 연신 코를 훌쩍여가며 묻자, 질문을 받은 여자가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야! 신재현 그 새X 이름은 갑자기 왜 꺼내!"

"아니….. 그 사람은 잘 먹고 잘 사는데, 너 이러고 있으면 너만 손해 아니냐는 거지."

"바람이 내 시름을 다 날려줄거야. 난 지금 정화하러 온 거야. 그러니까 방해하지 마."

그녀가 눈을 감고 바람을 들이켜는 걸 보며 질문한 여자가 아랫입술을 꾹 물었다.

야…… 네가 나 끌고 왔잖아…… 라는 말이 목구멍을 치밀고 올라오는데, 대놓고 말하기에는 친구가 제정신으로 보이지 않아 가만히 있었다.

그저 코만 다시 훌쩍 들이켰다. 내일 아침에 1교시 수업이 있는데, 왜 인천까지 내려와 이 청승을 떨어야 하는 건지.

다 친구를 잘못 만난 자기의 업보려니 생각하기엔 12월 겨울 바다는 너무 추웠다.

신재현. 어디서나 눈에 띨 정도로 잘 생긴 돈 많은 남자다. 아버지가 무슨 사업을 하신다나…… 그 남자가 고백해 왔을 때 친구는 온 세상을 다 가진양 행복해 했다.

다들 오래 못 갈 거라고 예상한 것과는 달리 두 사람은 장장 1년을 만났다.

그러다가 그가 당당히, 친구의 말을 빌자면 마치 너도 예상하고 있지 않았냐는 투로 당당히 결별을 선언했다고 했다.

학교 전체에 두 사람의 결별 소식이 들리고 신재현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많은 여자들이 그에게 알랑방귀를 뀌었다.

역시 남자는 잘생기고 돈이 많아야 하는구나 여겨질 정도로.

사흘을 수업도 다 째고 두문불출하는 친구를 찾아간 게 실수라면 실수였다.

그녀는 인아가 차가 있다는 이유로 다짜고짜 그녀에게 바닷가에 데려다 달라고 했고, 평소 거절을 못 하는 성격에 괜히 위문을 갖다가 기사 노릇에 수행원 노릇까지 하게 되었다.

"효진아. 우리, 언제까지 여기 있어? 그만 가야 하지 않아?"

인아가 못 참고 말하자, 효진이 무심하게 몸을 돌렸다. 그러나 바닷가 반대쪽으로 걷는 게 아니라, 해변 옆을 따라 걷고 있었다.

게다가 하필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인아가 한숨을 쉬며 목도리를 더 단단히 여민 후 그녀 뒤에 따라걷기 시작했다.

발가락에 감각이 없어질 때쯤, 갑자기 앞서 걷던 효진이 자리에 우뚝 섰다. 그 바람에 뒤를 따라 걷던 인아는 그녀의 뒤통수에 이마를 쿵 부딪치고 말았다.

"왜 갑자기 서?"

"야, 저거 뭐야?"

효진의 시선을 따라간 곳에는 기이하게 생긴 바위가 서 있었다. 드디어 해변 끝에 다다른 건가 해서 인아의 입가에 미소가 뜨려는데, 그 시커먼 바위 아래 뭔가 새하얀 것이 놓여 있는 게 보였다.

"저게 뭐야? 흰 고래 뭐 그런 건가?"

인아가 중얼거리자 효진이 부지런히 그쪽으로 달려갔다. 인아도 부지런히 뒤따라갔다.

뜻밖에 그건 사람이었다. 신기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머리카락도 하얗고, 얼굴도 하얗고, 입고 있는 옷도 펑 젖긴 했지만, 희었다.

깊게 덮여있는 속눈썹과 입술까지 희어 사람이 아닌 언뜻 조각상처럼 보이기도 했다.

효진이 부지런히 휴대폰을 꺼내 119에 전화를 걸었다.

"여기, 해변에 사람이 쓰러져 있어요!...... 위치요? 여기 위치가……"

인아가 휴대폰으로 현재 위치를 검색해 그녀에게 보여주고는 자기 겉옷을 벗어서 쓰러져 있는 사람을 덮어주려 했다.

그러자 효진이 위치를 설명하다 말고 얼른 그런 그녀를 말렸다.

이내 전화를 끊은 그녀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야, 입어, 입어. 감기걸려."

"하지만, 이 사람 다 젖었는데……"

그러자 효진이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죽은 사람 같애."

"으응?"

그녀의 말에 인아가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시신이란 말야?

혈색이 없는 걸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근데 시신도 보통 뭐 덮어주지 않나?

"자살했거나 어쩌다 바다에 빠졌는데 여기까지 밀려온 거 같애."

효진이 심각한 표정으로 추리하는 걸 들으며 인아가 시선을 다른 곳으로 피하며 대꾸했다. 시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차마 누워있는 사람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어디 아픈 사람같지 않아? 늙어보이지도 않는데 머리가 하얘."

"그러게….."

인아와는 달리 효진이 누워있는 사람을 유심히 보며 중얼거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사이렌 소리와 함께 구급요원들이 달려왔다.

구급요원들은 시신을 이동침대에 실은 뒤 담요까지 덮어서 구급차로 옮겼다.

한 구급요원이 효진과 인아를 보며 말했다.

"함께 가시죠. 몇 가지 여쭤봐야해서요"

"저희도 가요? 저희는 그냥 시체를 발견한 것 뿐인데."

효진이 머뭇거리며 말하자 구급요원이 약간 벙진 표정이 되었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저분 아직 돌아가시지 않았습니다."

"살았어요? 살아있는 사람이예요?"

인아가 버럭 외치자 효진과 구급요원이 동시에 움찔했다.

그녀는 순간 그냥 옷을 벗어줄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 사람이면 얼마나 추웠을까.

그런데 못 본 척하고 그저 말만 하고 있었으니……

"갈게요! 구급차에 같이 타면 돼요?"

인아가 적극적으로 말하자 효진이 친구의 팔을 슬쩍 잡았다.

"야아…… 뭘 가. 우리는 신고했으면 됐지."

"아니, 그래도 어떻게 된 건지 들어봐야 할 거 아냐."

"뭘 들어. 우리는 신고했잖아."

"뭐 진술 같은 거 해야 한다잖아."

그녀의 적극적인 태도에 구급요원이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

"네. 같이 가시죠."

효진이 못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구급차에 올랐다. 신고했으면 된 거 아닌가. 번거로운 일은 딱 질색인 그녀였다.


***


구급요원과 경찰의 질문에 성실히 답변을 하고, 솔직히 답변이라고 해봤자 별 게 없었다. 그저 해변을 걷다가 그를 발견한 것뿐이니까.

아니, 그년가?

해변 걷다가 봤다 이 한마디를 하기 위해 병원에서 장장 세 시간을 보낸 두 사람은 근처 민박집을 소개받아 하루 묵고 가기로 했다.

날도 추운 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탓에 인아에게는 운전할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따끈한 방바닥에 등을 붙이고 누우니 잠이 솔솔 왔다.

"아…… 오늘 하루 정말 버라이어티하다. 하지만 덕분에 신재현을 좀 잊게 돼서 좋네."

효진은 헤어진 남친을 잊게 되는 유익이 있었는데, 인아는 자기에게는 무슨 유익이 있었나 싶었다.

휘발유 값을 날리고, 감기를 얻고, 내일 수업은 듣지도 못하게 되고…… 그래도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있으니 이 정도의 불이익은 경한 것이다 여기고 눈을 감았다.

한참 꿈결을 헤매고 있을 때 인아는 거친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야, 이 새X야! 네가 헤어지자고 했잖아!"






 

'습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6화.  (17) 2023.03.29
5화.  (6) 2023.03.28
4화  (19) 2023.03.27
3화.  (12) 2023.03.26
2화  (21) 2023.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