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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강형민입니다.
4화 본문
습작
4화
강형민
2023. 3. 27. 01:38
4화.
경찰들의 말에 인아는 황당한 표정으로 창백한 무연고자를 바라보았다. 겨우 한쪽 팔만 풀렸을 뿐인데, 어찌나 난리를 치며 소리를 지르는지 간호사가 귀를 귀마개로 막고 와 진정제를 주사했다.
처음 이런 장면을 봤으면 간호사가 오버하는구나 생각했을 텐데, 간호사도, 경찰들도 다들 그가 입만 열면 귀를 막고 괴로워하는 통에 인아는 그냥 자기가 이상한가보다고 생각 굳히기에 들어갔다.
그런데 아무리 본인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해도, 무연고자를 데리고 가서 직접 보호하라고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아니, 원래 저런 분들 보호하는 기관 있지 않나요? 아니, 신고한 사람 보고 직접 보호하라고 하면 누가 신고를 하겠어요? 그냥 죽게 놔두지."
인아가 따지듯 묻자 사복 경찰이 곤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물론 보호기관이 있죠. 그런데 저 분 상황이 워낙 특별하다 보니…… 그리고 지금 보니까 저분이 이상한 소리 낼 때 신고자분만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저분 지르는 소리가 아래층까지 다 들릴 정도라는데. 저런 분을 어디서 맡아 줘요. 보호 기관도 다 만원인데."
"아니, 그럼 가족을 찾아줘야죠. 지문 검색 뭐 이런 거 하면 가족 찾아줄 수 있지 않아요?"
그러자 이번엔 제복을 입은 경찰이 말했다.
"아, 간호사한테 이야기 못 들으셨어요? 저분 지문이 없어요."
"네에?"
인아의 눈이 커졌다. 세상에 지문이 없는 사람도 있나?
"그게 말이 돼요?"
"그게, 너무 혹사당하면 지문이 없어진다고 하더라고요. 저분 암만 봐도 불법체류자 같아요. 좀 모자라고 말도 못 하고 그러니까, 누가 가둬놓고 일만 시켜서 탈출한 거 같은데."
그의 말에 인아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만 나왔다. 대체 뭘 보고 모자란다고 하는 건가. 상당히 멀쩡해 보이는구만.
의사는 안 오고 왜 경찰들만 와서 이런 근거 없는 소리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일단 이분이 뭘 원하는지 신고자분이 제일 잘 아시는 것 같으니까. 잠시만 보호하고 계시면 저희가 신분 밝혀지는 대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이 말을 하는 사복 경찰의 눈이 어째 그녀도 이상한 사람 보는 듯해 인아는 기분이 불쾌해졌다. 그래서 더욱 단호하게 거절했다.
"저는 이분 못 데리고 가요. 이게 말이 돼요? 이거 경찰들이 해야 할 일이잖아요. 이건 완전히 신고했다가 봉변당하는 건데."
"아, 이거 참."
그녀의 말이 틀린 게 없어 경찰들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요 몇 시간 상황을 본 결과 그를 보호하겠다고 할 단체는 어디에도 없을 것 같았다.
일단 저 소리만 좀 어떻게 해결이 돼도 괜찮을 것 같은데, 당최 말이 통하지 않으니.
"아!"
갑자기 인아가 소리쳤다.
"발가락 지문! 손가락 지문이 없으면 발가락 지문도 찍는다고 어디서 본 거 같은데. 해보셨어요?"
그러자 경찰이 더더욱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분 발 못 보셨어요?"
"네?"
사복 경찰이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더니 무연고자를 덮고 있는 이불의 아랫부분을 살짝 들췄다. 그의 발을 본 인아의 눈이 커졌다.
어찌 된 일인지 발가락 다섯 개가 죄다 붙어 있었다. 아니 발가락이 다섯 개가 맞는지 확실하지도 않았다. 어렴풋이 형체만 있을 뿐이니까.
못 볼 거라도 본 것처럼 인아가 얼른 고개를 돌리자,경찰이 이불을 다시 덮으며 말했다.
"발도 기형이라서 지문이 안 찍혀요. 지금 머리카락으로 신원 조회해 보려고 시도 중이니까 그동안만이라도 잠깐만 보호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러나 이 말도 그닥 확신에 차 있지 않았다. 그가 불법체류자일지도 모른다는 선입견이 굳게 박힌 탓이리라.
인아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니, 낯선 남자를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걸 보고 경찰들은 서로 마주 보더니, 이내 사복 경찰이 부드럽게 말했다.
"아, 알겠습니다. 저희가 너무 부담을 드렸죠? 죄송합니다. 저희가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인아를 놔두고 방을 나선 두 사람이 각자 휴대폰을 꺼내 들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가 있을 만한 곳을 찾는 것 같았다.
병원에서는 무연고자가 신체적으로 별 이상이 없는 데다가, 다른 환자들에게 너무 피해가 간다며 빨리 데려갈 것을 종용한다고 하였다.
가만히 한숨을 쉬며 새하얀 남자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 그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동공이 풀리기는 했지만, 그의 시선은 그녀를 향해 있었다.
"괜찮아요? 지금 경찰들이 그쪽 있을 만한 곳 찾아보고 있어요."
<...... 풀어……>
그가 하는 말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소리가 작아 그런지 밖에서 통화 중인 경찰들은 다행히 소리를 못 드는 듯했다.
그래, 이렇게 작게 말하면 되는 거 아냐? 앞으로 이렇게 말하라고 가르쳐줄까?
인아가 그의 옆에 의자를 당겨와 앉으며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이렇게 작게 말하라고 말해주려고 할 때, 갑자기 그의 회색 눈동자가 그렁해지더니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 왜, 왜 울어요? 네?"
그러나 그는 눈을 깜빡거리기만 할 뿐 별말이 없었다. 아직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인아가 소매로 그의 눈물을 닦아주며 차분하게 말했다.
"저기, 그쪽이 말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다들 시끄럽다고 힘들어해요. 그쪽이 내는 소리 때문에 있을 곳도 마땅치 않은가 봐요. 그러니까 말을 할 때 작게 말해요. 큰 소리로 말하지 말고 작게. 지금처럼. 그럼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안 할 거예요."
그러자 그가 힘겹게 입을 움즉거리기 시작했다.
<...... 못 알아들어……>
"네?"
<...... 저들은…… 못 알아들어……>
"......"
<너만……. 너만 알아들어…… 내 말……>
말을 마친 그가 힘든 듯 다시 눈을 감자, 또 눈물이 흘러내렸다. 새하얀 남자가 눈물을 흘리며 맥없이 누워 있는 모습이라니.
이건, 아무리 애가 없는 인아라고 하더라도 이만저만 모성애를 자극시키는 형상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 이 사람 말은 왜 나만 알아들어가지고……
그때 방문이 열리며 사복경찰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들어왔다.
"신고자분은 그만 가셔도 됩니다."
"이분 있을 곳 찾으셨어요?"
"네. 장애인 보호 단체 중 한 곳에서 잠시 보호하기로 했습니다. 병원에서 하도 난리니까 일단 오늘은 경찰서에 데리고 갔다가 내일 이동하려고요."
"네? 오늘 경찰서에서 재운다고요? 이분이 뭘 잘못했다고요?"
그러자 경찰이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 뭘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냥 있을 곳이 없으니까 오늘 하룻밤만."
말투에 이제 너는 상관하지 말라는 듯한 경고가 배어 있는게 느껴졌다. 인아가 입술을 꾹 깨물고 무연고자를 내려다보았다.
"제가 데려갈게요."
인아가 갑자기 정색을 하고 말했다.
"네?"
"제가 데려가겠다고요."
잠시 놀란 것 같던 경찰관들의 얼굴은 점점 밝아지는데, 막상 말을 꺼낸 인아의 얼굴은 점점 흙빛이 되었다.
주 인아! 너 미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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