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1인실에 있다고 해서 무연고자라고 해도 대우가 좋구나 생각했는데, 1인실은 인아가 생각했던 1인실과는 많이 달랐다.
일단 일반 병실이 모여 있는 층에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기자재실과 창고 같은 곳이 모여 있는 맨 꼭대기 층의 구석 방이었다.
병실이라기보다는 직원 숙직실 같은 작은 방인 것도 모자라, 무연고자의 팔다리는 묶여 있고, 입에는 천이 물려 있었다.
"이, 이게 뭐예요?"
인아가 경악하며 묻자 남자 간호사가 민망한 얼굴로 대답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계속 괴상한 소리를 내고 난동을 피워대는 통에 다른 환자들에게 피해를 줘서 여기 있게 한 겁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아니죠! 아무리 신분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아픈 사람을 이렇게 대하는 병원이 어디 있어요?"
인아가 앙칼지게 외치고는 무연고자의 입에서 천을 꺼내주었다. 그녀의 손이 닿자마자 새하얀 속눈썹이 올라가며 그가 눈을 떴다.
눈을 뜬 건 처음 보았다. 온통 새하얀 것도 이상한데, 눈동자도 연한 회색이다.
한국 사람이 아닌가? 어떻게 이렇게 생겼지?
그가 그 특이한 눈동자로 자기를 빤히 바라보는 것을 보며 인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 괜찮으세요?"
그러나 그는 그녀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여전히 그녀를 올려다 보고만 있었다.
"바닷가에 쓰러져 계신 걸 제가 신고했어요."
그러자 그가 천천히 입을 벌렸다. 그가 입을 벌리자 옆에 서 있던 남자간호사가 가까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네가 나를 여기 처박은 인간이구나?>
응? 처박아? 아니, 구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가 무례하다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남자 간호사가 한 손으로는 귀를 막은 채로 그의 입에 다시 수건을 쑤셔 넣었다.
그가 인상을 쓰며 고개를 흔드는 걸 보며 인아가 깜짝 놀라서 간호사를 떠다밀었다.
"뭐 하시는 거예요!"
"아, 이렇게 소리를 지르는데, 괜찮으세요? 어제도 밤새도록 이렇게 괴상한 소리를 질렀다고요!"
간호사가 억울하다는 듯 더 큰소리를 내는 걸 보고 인아가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무슨 소리를 질렀다고 그러세요? 그냥 말했는데?"
그러자 이번엔 간호사가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계속 삑삑대는데? 사람이 어떻게 이런 소리를 내는지, 골이 깨지는 것 같은데!"
인아는 간호사가 미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가 수건을 너무 깊이 쑤셔 넣었는지 무연고자가 구역질을 하며 고개를 비틀었다.
인아는 얼른 다시 그의 입에서 수건을 꺼내주었다. 그가 몇 차례 구역질을 하더니 다시 발버둥을 치며 말했다.
<어서 나를 풀어라!>
"가만히 계시면 풀어드릴게요. 자꾸 움직여서 간호사들이 떨어질까 봐……"
인아가 그를 진정시키며 말하는데, 간호사가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며 말했다.
"다시 수건 물려요! 아래층까지 다 들리겠네!"
아무리 봐도 간호사의 행동이 이상해, 인아는 그를 밀어서 방 밖으로 내보냈다. 방 밖으로 나와도 무연고자의 외치는 소리가 계속 들리자, 간호사가 문을 쿵 닫아버렸다.
인아는 손을 허리에 붙이고는 따지듯이 물었다.
"환자가 말을 하면 들어야지, 입에 재갈을 물리지 않나 대체 무슨 짓이에요? 간호사 맞아요?"
그러자 간호사가 험악하게 말했다.
"보호자분이야말로 귀가 이상하신 것 같은데요? 저게 말소리로 들리세요? 계속 삑삑대잖아요? 무슨…… 그 뭐냐…… 돌고래같이 어? 그 막, 삑삑대는 소리. 아니, 사람이 어떻게 저런 소리를 낸대? 저 분이 계속 저런 소리를 내서 어제 응급실 난리 났었어요. 오죽하면 저분 환자인 거 알면서도 이런 곳에 있게 했을까!"
그의 말을 들어보니 농담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입에서 이상한 소리를 낸다고? 그러나 그녀의 귀에는 그의 말이 틀림없이 말소리로 들렸다.
정말 내 귀가 이상한 건가 싶어서 인아는 멍한 표정으로 간호사를 올려다 보았다.
***
벨소리에 휴대폰을 받은 간호사는 인아보고 잠시 이곳에 있어 달라고 부탁하고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무도 없는 복도에 덩그러니 남은 그녀는 무연고자가 있는 방을 힐끗 바라봤다가 다시 엘리베이터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방안에서 또 말소리가 들렸다.
<아, 이거 풀어달라고! 내 말 안 들려!>
아무리 들어도 말소린데 왜 삑삑댄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게 맞긴 하지만, 재갈을 물릴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인아는 다시 복도를 두리번거리다가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새하얀 무연고자가 그녀를 보자마자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면서 말했다.
<이제야 들어와? 어서 이거 풀어!>
인아가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가만히 있겠다고 약속하면 풀어드릴게요."
<일단 풀어.>
"응? 아니, 가만히 있겠다고 약속하면 풀어주겠다고요."
<먼저 풀라고!>
"계속 그러면 못 풀어드려요. 그리고 제가 묶은 게 아니라 여기 병원 직원들이……"
<약속해.>
"네?"
<약속한다고. 풀어주면 얌전히 있겠다고.>
"약속했어요?"
인아가 침대 가까이 다가가 그의 팔목에 묶여 있는 끈을 풀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찌나 단단하게 묶어 놨는지 매듭이 영 풀리지 않았다.
<뭐해?>
그가 고개를 틀며 말하자 그녀가 낑낑거리며 말했다.
"이거 너무 단단하게 묶어서 안 풀리는데요?"
<힘을 줘.>
"힘주고 있어요."
인아가 손톱 끝이 부러지도록 어떻게든 매듭을 풀기 위해 기를 썼다. 손가락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큼의 틈이 생기자 그녀는 꼬여 있는 끝을 구멍에서 잡아뺐다.
매듭 하나가 풀리자 나머지는 쉽게 풀렸다.
그의 눈부시게 흰 팔목이 시뻘게진 채로 쪼글쪼글해진 걸 보며, 인아는 저도 모르게 손바닥으로 그의 팔목을 꾹꾹 주물러 주었다.
그러자 그가 팔목을 잡아 빼며 말했다.
<뭐 하는 거야? 나머지도 풀어.>
"네? 아, 네."
그런데 침대가 벽에 붙어 있는 까닭에 반대쪽 팔목을 풀기 위해서는 침대 위로 올라가야 할 것 같았다.
"잠깐 침대 위로 올라갈게요."
그녀가 한쪽 무릎을 침대 위에 올린 채 상체를 숙여 매듭을 풀려 했으나, 영 자세가 안 나왔다. 자세가 안 나오니 손에 힘도 잘 안 들어갔다.
"저 미안한데, 잠깐만요."
인아가 완전히 침대 위로 올라가 무릎 하나를 그의 반대쪽으로 옯겼다. 졸지에 그의 몸에 그녀가 올라탄 형상이 되었으나, 매듭을 푸느라 그걸 신경쓸 틈이 없었다.
그때 갑자기 방문이 열리며 사복을 입은 남자와 경찰복을 입은 남자 둘이 들어왔다. 대화를 나누며 들어오던 두 사람은 침대 위 풍경을 보고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아, 여기 팔 풀어달라고 해서……"
인아가 무연고자의 묶인 팔을 가리키며 말했으나, 두 남자는 서로 다른 곳을 처다보며 큼흠 헛기침을 했다.
그때 갑자기 누워 있던 새하얀 남자가 한 팔로 그녀를 확 밀어버렸다.
"꺄악!"
인아가 중심을 잃고 침대 아래로 떨어지자마자, 다른 곳을 보던 두 남자가 정말 전광석화 같은 동작으로 달려와 그녀를 받쳤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다치면 어쩌려고!"
사복을 입은 남자가 누워 있는 그를 향해 외치자 그 역시 지지 않고 고함을 질렀다.
<어제 그놈들이구나!>
그가 소리를 내자마자 두 사람이 아까 그 간호사와 똑같이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아, 또 저 소리!"
"저거, 일부러 저러는 건가? 어?"
간호사들과 똑같은 반응이었다. 여태까지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의 말을 들을 수 있고, 그와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인아 뿐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