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강형민입니다.
7화 본문
7화.
라티아나는 목발을 전혀 짚지 못했다. 아니, 원리를 아예 모르는 것 같았다.
"라티나 씨. 목발을 발이라고 생각해야죠. 오른발, 왼발 번갈아 움직여서 걷는 것처럼 목발도 오른쪽, 왼쪽 번갈아…… 네?"
목발을 겨드랑이에 낀 것까지는 성공했으나, 한 발짝도 떼지 못하는 그와 인아는 30분째 지하주차장에서 씨름 중이었다.
<몰라. 이거 안 되겠어.>
갑자기 그가 목발을 바닥에 던져 놓더니 차에 등을 기대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이거 잡고 걸어야죠! 나, 라티나 씨 업고 집까지 못 올라가요!"
인아가 허겁지겁 목발을 주으려 하자 라티아나가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잡아.>
"네?"
<내 손 잡으라고.>
그의 단호한 말에 인아가 목발을 줍기 위해 구부렸던 허리를 펴고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라티아나가 그 손을 덥석 잡더니 오른발을 떼어 한 발짝 움직였다.
"어?"
얼떨결에 라티아나의 손을 잡기는 했으나, 그가 발을 떼는 걸 보고 인아의 눈이 커졌다. 그녀를 잡은 손에 잔뜩 힘을 준 채로 그는 또 한 발짝을 떼었다.
마치 이제 돌지난 아이가 걸음마를 떼는 것처럼 라티아나는 그렇게 한 발짝 한 발짝 걷고 있었으나, 엘리베이터까지 가기에는 속도가 너무 느렸다.
간신히 엘리베이터까지 온 라티아나는 벽에 등을 기댄 채로 주르륵 땅에 흘러내렸다.
<와, 생각보다 걷는 게 되게 힘드네. 다리 생기면 저절로 걸을 수 있다더니.>
무슨 말인가 싶어 온몸에 힘을 주어 부축했던 인아도 숨을 몰아쉬며 그의 옆에 주저 앉았다.
"무슨 말이예요? 다리가 없었어요?"
<있긴 있었는데, 이렇게 생기진 않……>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아이를 데리고 있던 엄마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두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엘리베이터 앞에 젊은 남녀가 앉아 있으니. 게다가 남자애는 환자복을 입고 있는 데다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새하얗다.
아이도 흘끔흘끔 라티아나를 훔쳐보자 애 엄마는 실례라고 생각했는지 아이를 번쩍 안아들고 주차되어 있는 차로 부지런히 걸어갔다.
라티아나도 신기한 눈으로 그들 모자를 바라보며 있었다.
<저렇게 조그만데…… 잘 걷네.>
이상한 말도 중얼거리면서.
인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또 갈까요? 우리 집은 5층이예요."
엘리베이터에서 집까지 1분도 채 안 걸릴 거리를 10분 이상 걸어서 간신히 집으로 들어온 라티아나는 집안으로 돌아오자마자 인상부터 썼다.
<또, 좁네.>
부엌과 거실이 하나로 되어 있는 작은 아파트 거실에는 작은 소파만 하나 덜렁 놓여 있다.
"응? 좁아요? 이래봬도 여기 20평댄데? 서울 집값이 얼마나 비싼지 알아요?"
<몰라. 서울이 뭔데?>
"여기가 서울이잖아요. 진짜 갇혀서 일만 했나보네. 여기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고, 이 도시는 서울이예요. 당신이 있던 곳은 인천."
<이 좁은 데서 얼마나 있어야 해?>
인아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는 자기 말만 했다. 그녀가 한숨을 쉬며 이인용 소파에 앉아 있는 그를 내려다보았며 물었다.
"되게 넓은데 살았나봐요."
자꾸 좁다고 하는 걸 보면 그가 살던 곳은 굉장히 넓은 곳인 것 같은데, 문득 재벌집 막내아들이 납치라도 당했던 건가 싶었다.
"저기, 혹시 누군가에게 납치 당했어요? 막 돈 요구하고 그러다가 안 되니까 일 시켰나?"
그러자 그가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렸을 때 이카루드 놈들한테 납치당한 적 있는데, 이제는 못 해. 내 힘이 엄청 세져서.>
어째 자랑이 배어 있는 것같은 그의 말에 인아가 화들짝 놀랐다. 내용을 들어보니 무슨 조직폭력배 출신인 듯했다.
"혹시 이탈리아 출신이예요? 거기 조직의 아들 뭐, 그래요? 그럼 거기서 반대 세력이랑 싸우다가 도망친 거예요? 배에서 막 뛰어내렸나? 그러다가 인천까지 흘러들어온 건가? 그래요?"
<이탈리아 가봤어? 내 친구들이 거기로 많이 가. 가까워서.>
인아가 손가락을 딱 쳤다. 역시! 그녀의 짐작이 맞았다. 그는 이탈리아 조직 보스의 아들인 것이다. 그들만의 전쟁이 있었고, 그는 그 전쟁 중에 잡혔다가 탈출한 것이다.
그러나 실상을 알고 나니 더 난감해졌다. 우리 나라 경찰이 이탈리아 조직폭력배를 잡을 수 있나? 그러나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그를 이탈리아로 돌려보낼 수만 있다면.
<근데……>
"네?"
<너네는……>
그가 얼굴을 붉히며 머뭇거렸다. 계속 뻔뻔하던 사람이 신상을 공개하고 나니 비로소 자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나 해, 인아가 그의 다음말을 기다렸다.
<배변활동은 어떻게 해?>
헐…… 인아의 입이 떡 벌어졌다.
전화기 너머로 쨍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ㅡ 야! 그 사람을 네가 왜 데려와!
효진이가 황당해 하는 건 당연했다. 무연고자를 신고했는데, 그 사람을 돌보기까지 하라니, 처음부터 말이 안 됐다.
"말도 안 통하고 갈 데도 없어서 어쩔 수 없었어."
ㅡ 그거야 그 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네가 무슨 상관이야!
"사람이 좀…… 모자라기도 해."
모자라다는 표현이 좀 안 맞는 것 같긴 했지만,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ㅡ 어디가 모자란데?
인아는 변기 사용법까지 가르쳐줘야 한다는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다른 말로 돌렸다.
"하여튼, 가르쳐야 할 게 많아."
ㅡ 야, 어린애도 아니고 다 큰 남자를 가르치긴 뭘 가르쳐? ……. 남자 맞지?
"맞아."
외모만 보면 모호했지만, 가슴도 없고 목소리도 그렇고 무엇보다 말투가 남자였다.
ㅡ 야, 너 설마 남자라서 데리고 있겠다고 한 건 아니지? 아무리 굶었어도 그건 아니다. 게다가 너네 오빠 어쩔거야?
의리없이 남친이랑 먼저 가버린게 누군데 지금 자기를 굶은 여자 취급을 하나 해서 은근 화가 난 인아가 서둘러 말했다.
"하여간, 경찰서에서 연락올 때까지 내가 데리고 있기로 했어. 이번주 수업 죄다 빠지게 될 것 같은데, 과제 같은 거 있으면 좀 알려줘. 어?"
ㅡ 야, 지금 과제가 문제야? 빨리 그 경찰한테 전화해서 데려가라 해! 아니다. 내가 할게. 전화번호 좀 알려줘 봐.
"됐어. 나중에 통화하자. "
ㅡ 야!
효진이 부르는 소리에 대답도 하지 않고 인아는 전화를 툭 끊었다. 해결책도 없는 친구의 잔소리를 듣는 것도 귀찮았지만, 아까부터 들려오는 수돗물 소리가 몹시 신경쓰였다.
배변활동을 하러 화장실에 간 남자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물소리만 나니, 인아는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해서 화장실 문을 두드렸다.
"라티나 씨! 괜찮아요?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죠?
그러나 안에서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혹시 잘 걷지도 못하는 남자가 수돗물만 틀어놓고 쓰러졌나 해서 인아는 문을 벌컥 열었다.
"라티나 씨!"
화장실 광경을 본 인아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작가의 말 : 키보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어서 휴대폰에 엄지 손가락으로만 타자를 쳤더니 손가락이 얼얼합니다. 혹시 오타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