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강형민입니다.
10화 본문
10화.
"그래서 지금 그 사람 혼자 집에 있어? 야, 너는 낯선 사람이 그렇게 집에 혼자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니? 뭐 훔쳐서 도망가면 어쩌려고."
학교 식당에서 만난 효진이 흥분해서 말하자, 인아가 한숨을 쉬며 대꾸했다.
"차라리 도망갔으면 좋겠다."
"응?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인아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가 외국 조직의 보스 아들인 거 같다느니, 누군가가 찾으러 온다고 했다는니 설명을 늘어놓았다.
친구의 설명을 듣고 있던 효진은 처음엔 놀란 반응이었다가, 곧 무시하는 투로 말했다.
"야, 그거 다 그 사람이 한 이야기 아냐?"
"어? 그렇지."
"야, 외국 조직 보스의 아들이고, 부자고, 누군가가 찾으러 올 정도로 유명한 사람인데, 샌드위치 비닐도 못 까고, 화장실 사용법도 알려줘야 하고, 수도에서 물 나오는 것도 신기해하고 그런다고? 게다가 잠도 욕조에서 자?"
제 3자의 입을 통해 들으니, 당최 말이 안 되긴 했다.
"야, 조직 보스의 아들이 아니라, 그 사람 그냥 좀 모자란 사람이야. 그리고 모자란 거 감추려고 어디서 본 걸 자기 이야기인 것처럼 하는 거네. 안 그래?"
"......그런가?"
그와의 대화가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꼈던 이유가 지금 생각해보니 말이 앞뒤가 안 맞아서 그런 거였다. 하는 짓은 바본데, 그가 하는 말은 뭔가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게 하니.
"야, 경찰한테 전화해서 빨리 데려가라고 해. 그 사람 어디 특수 시설 이런 데 가야 돼."
"말이 안 통한다니까?"
"너는 다 알아듣는다며?"
"...... 그러니까. 그게 이상해."
인아가 손바닥으로 턱을 괴며 중얼거리자 효진이 수저로 식판을 탕탕 치며 말했다.
"됐고. 그 경찰 전화번호 빨리 줘 봐. 이건 정말 공권력 남용이야."
공권력 남용이라는 말이 지금 이 상황에 맞는 말인지 알 수 없었으나, 인아는 순순히 휴대폰을 꺼냈다.
그런데 휴대폰을 꺼내자마자 지잉지잉 소리와 함께 까똑이 우수수 쏟아졌다.
인아가 뭔가 해서 열어보니 모두 라티아나가 보낸 메시지였다.
[KIMBAB]
다음엔 토하는 이모티콘이 왔다. 그러더니 이내
[FISH]
[FISH]
[FISH]
라는 문자가 연달아 왔다.
"뭐야?"
효진이 그녀의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물고기? 물고기 왜?"
"몰라. 자꾸 물고기가 먹고 싶대."
"응? 회 좋아하나?"
효진 역시 회를 좋아하는 탓에 좀전까지 특수시설에 보내라는 둥 다그치던 그녀의 얼굴에 반가운 빛이 떴다.
"으으…… 난 회 싫어."
어렸을 때 시퍼렇게 살아있는 생선에서 살을 뜨는 광경을 목격한 인아는 회라면 질색이었다. 이를 잘 아는 효진이 쩝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럼, 고등어나 구워줘."
입맛 까다로운 오빠와 자취를 몇 년 한 덕에 인아는 나름 요리를 할 줄 알았다. 천상 들어가는 길에 고등어나 한 마리 사서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답장을 보냈다.
[OK]
일부러 뺑 돌아 마트까지 다녀왔지만, 라티아나는 고등어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속삭였다.
<죽었잖아.>
"응? 당연히 죽었죠. 살아있는 애를 어떻게 데려와요?"
<죽은 걸 어떻게 먹어.>
"구워서 먹죠."
<구워?>
"네. 불에."
그러자 그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내내 속삭이던 목소리도 높아졌다.
<집에 불이 있어?>
"그럼요."
<보여줘.>
"네?"
<불 보여달라고.>
인아가 황당한 표정으로 벨브를 열고 가스레인지를 켰다. 타다닥 소리와 함께 파란색 불꽃이 피어오르자 라티아나가 신기한 표정으로 그걸 쳐다보았다.
마치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보며 인아는 문득 그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그의 다음 행동에 바로 날아가버렸다.
"뭐해요! 미쳤어요?"
라티아나가 손바닥을 불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인아가 기겁을 하며 그의 손목을 낚아채 잽싸게 싱크대에 물을 틀고 그의 손을 식혔다.
뜨거운 느낌 때문에 놀란 건지, 인아가 지른 소리에 놀란 건지, 라티아나가 커다란 눈을 더 크게 뜨고 자기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화상 입으려고 작정했어요? 아이도 아니고, 불 뜨거운 거 몰라요?"
인아가 잔뜩 흥분해 소리치는 것과는 달리 라티아나는 말없이 자기의 붉어진 손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잠깐 갖다 댄 거 같은데도 손바닥에 물집이 두 개나 잡혔다. 인아는 그의 손에 연고를 발라주며 혀를 찼다.
"금세 물집이 잡히네. 괜찮아요? 아프지 않아요?"
<아퍼.>
뒤늦게 쓰라림이 느껴지는지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불 뜨거운 거 몰랐냐구요. 왜 손바닥은 갖다대고 난리야. 어?"
<신기하잖아.>
"뭐가요?"
<불이.>
"라티나 씨 집에서는 전기레인지 써요? 요즘 전기레인지 많이 쓰긴 하는데. 그게 전기세가 많이 나온다고 새엄마가 저걸로 해줘서 우리는 그냥 저거 써요."
인아는 그의 손에 연고를 바르고 얇은 붕대를 헐겁게 감아주었다. 생각 같아서는 병원에 데려가야 할 것 같은데, 주민등록증도 없고, 무엇보다 말을 하면 안 되니, 이래저래 집에서 상처를 좀 지켜봐야 할 것 같았다.
"집에서 혼자 뭐 했어요?"
<컴퓨터 봤어.>
"인터넷?"
<글자를 몰라.>
"아아…… 구글 들어가면 영어로 나오는데."
<그거 몰라.>
"그럼 엔플릭스로 영화보지 그랬어요?"
<봤어.>
"봤어요? 뭐 재미있는 거 있어요?:
<아쿠아맨.>
"아쿠아맨? 아, 그 근육질 멋있는 남자 나오는 거?"
<죄다 거짓말이야. 바닷속엔 그런거 없어.>
"그걸 누가 몰라요? 그냥 상상하는 거지. 라티나 씨는 상상 안해요?"
<해. 매일>
"무슨 상상?"
<너네들 세상.>
"우리 세상? 아, 한국을 상상했어요? 한국에 와보고 싶었구나? 어때요, 와보니까?"
<전혀 달라.>
말하는 그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뜨는 걸 보고, 인아는 불쑥 '쳇, 지네 나라는 얼마나 잘났길래……' 중얼거리며 구급상자를 소리나게 탁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