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습작 (23)
안녕하세요, 강형민입니다.

7화. 라티아나는 목발을 전혀 짚지 못했다. 아니, 원리를 아예 모르는 것 같았다. "라티나 씨. 목발을 발이라고 생각해야죠. 오른발, 왼발 번갈아 움직여서 걷는 것처럼 목발도 오른쪽, 왼쪽 번갈아…… 네?" 목발을 겨드랑이에 낀 것까지는 성공했으나, 한 발짝도 떼지 못하는 그와 인아는 30분째 지하주차장에서 씨름 중이었다. 갑자기 그가 목발을 바닥에 던져 놓더니 차에 등을 기대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이거 잡고 걸어야죠! 나, 라티나 씨 업고 집까지 못 올라가요!" 인아가 허겁지겁 목발을 주으려 하자 라티아나가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네?" 그의 단호한 말에 인아가 목발을 줍기 위해 구부렸던 허리를 펴고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라티아나가 그 손을 덥석 잡더니 오른발을 떼어 한 발짝 움직였다. "어..

6화 평일 낮이니 차가 안 막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울로 들어서니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내내 조용하던 옆자리가 움즉거리는 게 보여 인아가 옆을 힐끗 보자 보조석에 있던 그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속 안 좋아요? 멀미나요?" "이 안에? 아, 차 안에?" "물이요? 목말라요? 편의점 들를까요?" 그러나 그는 말없이 창문을 톡톡 두드렸다. "왜? 창문 열고 싶어요?" 그러자 그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응? 차 안 타봤어요? 당연히 문은 열면 안 되지만, 창문은 열 수 있죠." 경찰이 모자라는 것 같다고 했을 때 속으로 욕을 했는데, 정말 좀 모자라는 것 같았다. 아님, 차를 안 타봤나? 설마…… 완전 부자라서 창문도 누가 일일이 열어주나? 하지만, 이래 저래 말이 안 되긴 했다. 인아는 ..

5화. "이, 이백 오십 만원이요?" 인아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무연고자는 발가락이 모두 붙어 있는 탓에 걷지 못한다고 하였다. 발가락 다섯 개가 지지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나 뭐라나. 천생 휠체어를 타야 하는데, 휠체어가 장장 250만 원이라는 것이었다. 인아는 순간적으로 통장 잔고를 생각했다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경찰에게 발끈했다. "아니, 내가 보호하는데 휠체어까지 내 돈 주고 사야 해요?" 이 모든 상황이 너무 황당하고 말이 안 되어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경찰도 그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휠체어 지원 사업 이런 것들에 대해 간호사에게 문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휠체어 지원 사업은 병원에서 하는 일이 아니라, 복지 재단에서 하는 일이라고 하였다. 관리하는..

4화. 경찰들의 말에 인아는 황당한 표정으로 창백한 무연고자를 바라보았다. 겨우 한쪽 팔만 풀렸을 뿐인데, 어찌나 난리를 치며 소리를 지르는지 간호사가 귀를 귀마개로 막고 와 진정제를 주사했다. 처음 이런 장면을 봤으면 간호사가 오버하는구나 생각했을 텐데, 간호사도, 경찰들도 다들 그가 입만 열면 귀를 막고 괴로워하는 통에 인아는 그냥 자기가 이상한가보다고 생각 굳히기에 들어갔다. 그런데 아무리 본인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해도, 무연고자를 데리고 가서 직접 보호하라고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아니, 원래 저런 분들 보호하는 기관 있지 않나요? 아니, 신고한 사람 보고 직접 보호하라고 하면 누가 신고를 하겠어요? 그냥 죽게 놔두지." 인아가 따지듯 묻자 사복 경찰이 곤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물론 보호기관..

3화. 처음엔 1인실에 있다고 해서 무연고자라고 해도 대우가 좋구나 생각했는데, 1인실은 인아가 생각했던 1인실과는 많이 달랐다. 일단 일반 병실이 모여 있는 층에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기자재실과 창고 같은 곳이 모여 있는 맨 꼭대기 층의 구석 방이었다. 병실이라기보다는 직원 숙직실 같은 작은 방인 것도 모자라, 무연고자의 팔다리는 묶여 있고, 입에는 천이 물려 있었다. "이, 이게 뭐예요?" 인아가 경악하며 묻자 남자 간호사가 민망한 얼굴로 대답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계속 괴상한 소리를 내고 난동을 피워대는 통에 다른 환자들에게 피해를 줘서 여기 있게 한 겁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아니죠! 아무리 신분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아픈 사람을 이렇게 대하는 병원이 어디 있어..

2화. 효진이 식식대는 소리에 잠이 깬 인아가 멍한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 네가 무슨 상관인데?....... 뭐? 네가 왜 데리러 와? …… 와. 이 또라이 진짜……" 이 민박에 자기들만 있는 게 아닐 텐데, 게다가 아직 밤중인 것 같은데 친구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거칠어지자, 인아는 슬그머니 그녀의 팔을 잡고 말했다. "야, 진정해. 옆방에 다, 들리겠다." 효진이 그녀를 힐끗 내려다보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 겉옷에 팔 한짝을 억지로 꿰어차기 시작했다. "야, 추운데 어디가? 효진아." 인아가 그녀의 다리를 잡으려 했으나, 효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가버렸다. 괜히 말렸나 후회하며 인아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데리고 들어올까 했지만, 멀리서 간간히 들려오는 고성에 그냥..

1화. 바람이 몹시 부는 바닷가. 두 여자가 그 바람을 오롯이 받으며 해변에 서 있었다. 해변에는 그저 모래와 미역, 여자 둘 밖에 없는 듯했다. "야…… 너 이러고 있는 거 재현 씨가 아냐?" 여자 중 한 명이 연신 코를 훌쩍여가며 묻자, 질문을 받은 여자가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야! 신재현 그 새X 이름은 갑자기 왜 꺼내!" "아니….. 그 사람은 잘 먹고 잘 사는데, 너 이러고 있으면 너만 손해 아니냐는 거지." "바람이 내 시름을 다 날려줄거야. 난 지금 정화하러 온 거야. 그러니까 방해하지 마." 그녀가 눈을 감고 바람을 들이켜는 걸 보며 질문한 여자가 아랫입술을 꾹 물었다. 야…… 네가 나 끌고 왔잖아…… 라는 말이 목구멍을 치밀고 올라오는데, 대놓고 말하기에는 친구가 제정신으로 보이지 않아..